데카당스 감상 소회, 정공법의 감동
-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 리뷰
- 2020. 10. 6. 05:37
트리거의 최근 오리지널 작품 중에서는 가장 시청자 친화적인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달링 인 더 프랑키스'의 의외의 전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제작사에게
불친절하고 고집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프레임을 씌웠었죠.
하지만 최근의 오리지널 TVA들을 쭉 들어 보면
오히려 제작측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장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제작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2~3년의 작품들을 들어봐도 편성이 길지는 않지만
작품 하나하나 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한마디를 꼭 남겨주었습니다.
그건 제작측과 시청자가 다르게 규정할 수 있지만
가장 간단하게 접근하더라도 만남, 희생, 인류 등 각종 요소를 뚜렷하게 전달했죠.
바로 이전 BNA에서도 여러 전하고 싶은 말들을
개성있는 캐릭터들로 비유적으로 표현해냈습니다.
하지만 BNA가 비유적이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 집중했다면
이번 데카당스에서는 좀 더 개인에 집중하며 인물의 내면과
묘사하고자 하는 독특한 세계 그리고 기본적인 감정에 더욱 집중했네요.
일단 인간 즉 탱커의 측으로 보면 생존에 집중하고 있죠.
그리고 사이보그들은 쾌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기후 파괴로 멸망한 세계, 사이보그는 대량생산된 사이보그들이 꾸려낸 가상의 세계
각 진영의 배경 묘사는 그렇게 디테일하지 않았죠.
오히려 생존과 쾌락의 대립적인 키워드에서 생기는 갈등과 감정의 흐름, 사건들에만 최대한 집중한 모습입니다.
이동 요새 데카당스의 묘사나 각종 도구와 같은 세계의 디자인이 결코 단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퀄리티들은 인물들의 묘사를 위해 받쳐주는 역할이었죠.
나츠메와 카부라기의 만남이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고
그 둘의 결단과 성장이 이야기의 성립 조건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둘의 감정과 관계가 이야기에서 비중이 크게 다루어졌죠.
여기서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이 저에겐 있었습니다.
바로 각종 사건들과 그 사이의 주요 인물들의 대화가 울림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작품 저마다의 감동이 있지만 데카당스에서는 가장 정공법스러운
예상되는 타이밍에 가장 최고의 감동을 선사해주었죠.
의외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알기 쉽고 커다란 감동을 주는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사이보그들의 귀여운 생김새나 펑크틱한 인간들의 생활 공간 등 여러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지만
주요 인물들의 대사가 정말 적절한 시기에 깊이 있게 오가는 부분이
다른 작품들과 가장 남달랐습니다.
이 부분도 나쁘게 말하면 소위 일본 애니메이션의 클리셰적인 대사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느낌은 최대한 배제한 상태로 담백하게, 은근하게 마음을 울려줍니다.
여러 사건들의 기저에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이라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이런 알기 쉽고 기초적인 감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작품의 세세한 설정이나 퀄리티 등
그런 예술작품 같은 감동을 주지는 않지만
매 화 마다 인물들의 대사에, 전하려는 마음에 푹 빠져서 작품을 감상했네요.
적절한 타이밍에 멋진 대사, 착한 대사, 귀여운 대사.
사건들이 있지만 사건을 해결하는데에 같이 골몰하게 되는 게 아닌
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희노애락을 보며 한층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2화의 거대한 반전 때문에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작품을 예상했지만
내용은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는 일대기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작품만의 독특한 대립 구도로 주는 신선함으로
집중도 하게 되고 환기도 하게 되고
12화 동안 달리는 내내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요소이긴 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려면 이 이야기부터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정상이겠죠.
하지만 마지막에 남는 키워드는 기상천외하게 그린 세계로 전하는 원초적인 감동.
이거였네요.
세계가 저 모양 저 꼴이 나도 뜨거운 가슴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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