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주사위 클럽, 브라운관 주말 저녁

좀 더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고 내놓게 되는 흐름은 항상 이야기보다는 작품 외적인 면모에 기대왔습니다.

물론 이야기가 먼저 이런 흐름을 이끌어내는 작품이 다수 있기는 하지만

강한 자극을 위해서는 외적 요소에 호소하는 게 보편적이기는 하죠.

장르를 불문하고 이런 흐름에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편승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양상에 역행하는 듯한 작품이 하나 보였습니다.

바로 2019년 4분기 '방과 후 주사위 클럽'이라는 작품이네요.

 

'방과 후 주사위 클럽'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학원물 일 것 같다는 생각만 품은 채 감상하기 시작한 1화에서

'보드게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고 의외인 인상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보드게임으로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하며 주제에 맞지 않게 걱정을 해보기도 했죠.

옆동네는 엄마랑 게임 속으로 모험을 떠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렘을 건설해야 하는데

보는 사람의 흥미본위에는 친화적이지 않은 보드게임이라니.

게다가 주인공도 소극적이고 정말 여고생들끼리 소담하게 보드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전부였죠.

요즘 뜻밖의 기세를 타고 있는 '백합'요소에 기대는 모습도 전혀 없는 상태로 말입니다.

 

슬슬 작품의 진가를 파악해 갈 때 쯤 해당 작품의 원작이 적지 않은 볼륨을 지닌 만화임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죠.

게임이 작품 중심에서 주 전개의 장치가 되기는 하지만

항상 매 편 보드게임과 함께 각자 다른 드라마가 전개됩니다.

 

특히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정서적인 장면들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반 드라마의 형식이 스쳐지나가기도 했죠.

캐릭터 개개인의 이야기에 작품의 러닝타임 전부를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공과 주역들이 있으면 각자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각 주역들이 만나는 인물들과의 이야기도 담백하게 담아내어 

매 편을 잘 만들어진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감상했네요.

 

물론 주연들 끼리의 사랑이 코드가 아닌 만큼

조연들이 이야기에 가끔가끔 등장해서 주연들 각자와의 러브라인을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외부에서 이야기에 크게 관여하는 기분을 불러일으켜 보통 같으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

몰입 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이들을 지켜보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며

이들을 응원하게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네요.

 

물론 보드게임이 주제인 만큼 보드게임에 대한 취급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 만큼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이 크지는 않은 만큼

해당 애니메이션을 통해 한번쯤은 보드게임을 돌아보며 즐기게 될 수도 있겠죠.

장기나 바둑 애니메이션 처럼 게임으로 작품의 기승전결 모두를 이끌어 내는 식은 아니지만

게임의 디테일과 규칙 등은 빠트리지 않고 담아내어 흥미를 돋구어줍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게임들이 매 편 하나씩 소개되니 뜻밖의 '알쓸신잡'을 충족시켜주기도 하네요.

게다가 이 게임들이 각자의 사연과 이어지며 감동을 자아내

시청자에게도 해당 게임에 대한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죠.

 

솔직히 조금은 놀라운 감상을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스스로는 본 작품의 수가 적지도 많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수준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단연 희귀한 매력을 품고 있는 작품중 하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죠.

비슷한 느낌을 굳이 꼽아보라면 단편 극장 애니메이션의 느낌과 같네요.

차분한 드라마와 예쁜 화면으로 모두에게 어필하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작품을 감상하며 극한의 감정을 체험할 일은 없지만

때때로 웃음짓고 공감하며 마음가고 어쩔 때는 응원도 하게 만드는

어쩌면 엔틱한 매력과 감상방법을 가진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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