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보지않을래?, 잊고 지냈던 로컬라이징의 즐거움

 

 80, 90년대 생을 전후해서 꽤나 폭넓은 연령층에 걸친 많은 사람에게 TV에서 송출되던 애니메이션의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앞다투어 애니메이션을 송출하던 시기도 있었고 투니버스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죠. 그때 그 시절의 공통점으로는 로컬라이징을 들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해 감복하고 마음을 함께 하며 즐기던 그때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한국식으로 로컬라이징이 되어있었죠. 일상계와 맞닿아 있는 주제 작품들에 한해서지만 그때 우리의 지명과 우리 식 이름으로 재탄생된 캐릭터들과 함께 새로운 일상을 감상하며 즐겼던 때가 있던 것입니다. 지금도 애니메이션 방송사에서는 수입 애니메이션에 대해 로컬라이징을 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연령층의 작품들에 한해서만 이루어지고 있고 그때처럼 성인층에 근접한 영어덜트를 대상으로 한 작품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때의 추억과 재미 우리의 정서에 친숙하게 다가와 더욱 정감 있게 느껴지던 등장인물들은 점점 국내 팬들 사이에 흐려져만 갔죠. 청소년향 작품의 수입 감소와 더빙, 로컬라이징 침묵은 불법으로 원본 해적판 애니메이션을 접하기 쉬워져 원본에 대한 맹신을 갖게 된 일부 팬들의 반향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잠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침묵을 시기와 예상을 비튼 채 과감하게 깨트리며 수입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2016년 수입된 '사실 나는'이라는 작품입니다.

 

이미지 출처 : 라프텔

 2015년 일본에서 제작되었고 2016년 우리나라에 로컬라이징 및 수입된 작품으로써 청춘과 학원생활에 대해 다루는 러브코미디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수 년동안 더빙이 전무했던 남성향 청소년계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따르는 작품이라는 거죠. 평범하고 모난데 없는 남주인공에게 모종에 사건들로 연심을 품는 여성 주인공들이 마구 등장하는 형식, 이야기의 분위기만 보더라도 익숙하지만 더빙으로는 꽤 오랜만에 만난듯한 감각까지 듭니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 일부 서비스 씬과 남성향 러브코미디에서 자주 연출되는 상황까지 보임으로써 이전 수입 더빙되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과감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특정 케이블과 같은 방송을 통한 루트가 아닌 네이버에서 단독으로 VOD 서비스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여느 작품과는 다른 특이한 모습입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남자 주인공인 현태양과 여자 주인공인 백보름, 현태양은 백보름에게 남몰래(?) 연심을 품게 되지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 과감히 단 둘이 교실에 있는 상황에서 고백을 결심하고 그녀에게 나아간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트리게 된 현태양, 으스스한 인상의 날개와 날카로운 송곳니, 신비한 분위기의 말없는 그녀는 사실 뱀파이어였던 것이다! 이 비밀을 알게 된 현태양은 함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백보름과 남모를 학교생활을 펼쳐나가게 되는데..라고 도입부를 줄일 수 있겠습니다. 네이버 시리즈 공식 설명란에서는 '생각하는 그대로가 얼굴에 나타나는 남학생이 같은 반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흡혈귀임을 알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러브 코미디 애니메이션'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쪽이 더 직관적으로 줄거리를 전달하는 듯싶네요. 어쨌든 이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러브 코미디 애니메이션입니다. 줄거리만 읽어도 비밀을 공유하는 백보름과 현태양의 가깝듯 가깝지 않은 거리감과 청춘들의 연심이 따끈하게 전해져 오는 듯하네요.  

 

백보름과 강시내 반장

 사실 전체적인 이야기와 구성하고 있는 플롯만 놓고 보자면 어느 정도 보아왔던 러브 코미디의 형식과 비슷한 방향을 취하고 있습니다. 모종의 사건들로 인기와는 거리가 멀던 주인공이 이야기 후반 가면 자신만 자각하지 못하는 주변에 귀여운 여학생 여럿과 친하게 지내는 인기남이 되어있는 흐름이죠. 이런 교과서같은 흐름에 첨부된 '사실 나는'만의 특별함은 바로 이런 일상을 이루는 구성원이 비일상적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히로인 뱀파이어 백보름부터 시작해서 외계인, 늑대인간을 거쳐 요정의 동행자와 악마까지 일상적인 학교에서 주인공들이 만나는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비일상적인 인물로 들어 차 있습니다. 같은 조리방식이라도 재료가 색다르면 맛도 다르듯 이 청소년 러브코미디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이 색다름으로 채워져 있어 비슷한 플롯 속 일어나는 사건은 전혀 색다른 것들입니다. 그리고 신선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지탱하는 동안 이 수많은 여학생들은 주인공 현태양을 두고 경쟁 아닌 경쟁 구도를 형성하면서 영어덜트 만의 흥미를 속속들이 챙겨나가죠.

 이것 까지만 놓고 봐도 신선하긴 신선하지만 어디서 보긴 봤던 소재 일 듯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접하는 사실 나는 만의 특이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노련한 PD의 로컬라이징이 함께 하는 작품이라는 거죠. 사회적 전반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작품이라면 로컬라이징을 해도 이미 일본의 작품을 많이 접한 보통 팬들의 시선으로는 일말의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때가 가끔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학교가 주 무대로 그 속에서의 생활이 주로 다뤄지고 있으므로 학교라는 특수한 사회 안의 학생들의 일들은 거리를 막론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삶의 양상이 나타나죠. 게다가 사회와 체계가 비슷한 일본을 각색했으니 더더욱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건 당연합니다. 이런 로컬라이징으로 우리의 정서에 친숙하게 다가와 대사 하나하나 상황 하나하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시청하는 영어덜트용 러브코미디란 그 파괴력은 다시 느끼니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수입 애니의 TV 방영 전성기 흐름 속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즐겼던 한국어와 한국 정서 속에서의 친숙함과 애니메이션 속 특별한 일상의 재현은 우리가 낯선 언어와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재미와 비하면 상상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우리말로 대사를 받아들이니 자막에 방해되는 시선 없이 화면 전체에 시선을 돌리게 되며 느껴지는 예쁜 캐릭터들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 그 외 캐릭터의 행동 변화가 일일이 느껴집니다. 온전히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면서도 귀로 듣고 느끼는 대사는 온전히 그 뜻을 이해하기 좋은 완성된 우리말임에 동시에 상황에 적절한 우리의 관용어도 캐릭터를 통해 말해지며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재미는 배가됩니다. 함께 첨부한 애니메이션 속 캡쳐에서 느껴지는 캐릭터의 다양한 표정과 함께 느껴지는 상황에 적절한 우리말 대사가 전해주는 재미는 이전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즐기며 세대를 공유하던 그때의 재미가 언뜻 스쳐 지나가는 듯합니다.

 게다가 이미 로컬라이징이란 존재를 파악한 현재의 팬으로서 거리를 두고 로컬라이징을 바라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습니다. 우리말로 개성 있게 표현된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각자의 말투는 물론이고 배경 속 세심한 한글화 모습에서 이전 여러 로컬라이징 연출을 수준 있게 해낸 노련한 PD의 터치가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공이 들어간 작품에서는 주제가들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죠. 매 화 접하는 번안된 오프닝과 엔딩을 흥겹게 즐기며 점점 외워져 가는 느낌 또한 예전 주제가를 대하던 자세가 겹쳐 보여서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로컬라이징 된 '사실 나는'에 대한 매력에 대해 역설했지만 작품 자체만 놓고 봐도 전체적인 이야기와 퀄리티 수준은 현재 많이 보이는 여느 러브코미디물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오히려 괜찮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우선 인기 있는 원작의 이야기로 그 속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캐릭터의 매력은 원작은 정발 되어 접하지 못했지만 저마다 개성이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원작에서도 이어받은 분위기인 듯한 서로의 출신적 특징을 이용한 막장 상황 연출과 개그 그리고 서비스 씬들은 수많은 러브 코미디 속에서 사실 나는이 구축한 확실한 재미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캐릭터의 매력과 이야기의 매력을 이야기해도 러브 코미디의 요점은 캐릭터가 예뻐야 볼 맛이 나죠. 필자도 이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 걸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글을 읽는 사람이 이에 공감한다면 사실 나는은 기준에 합격일 듯싶습니다. 글에 첨부한 캡쳐들에서도 보이듯이 남주를 괴롭히는 다수의 히로인들은 각양각색으로 미모를 뽐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만 놓고 봐도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겠네요.

 

우리 사회에 속한 우리나라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편안한 정서가 있다.

 소위 말하는 '더빙빠'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더빙에 대한 호의는 가져왔으나 그 이유 자체는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게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접하고 로컬라이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각적으로 보며 파악하고 한껏 더 작품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언어에 대한 우수성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말로 느끼는 우리 일상 속 언어들, 그것을 뱉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즐기며 향유하던 귀여운 캐릭터들, 이런 부분에서 로컬라이징과 더빙은 저마다 나라 마다 우수한 문화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규모 있는 나라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네요. 이런 의미에서 수년만에 예고 없이 다가왔던 사실 나는 더빙판의 존재는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두근거리고 개성 있는 러브코미디와 우리의 유쾌한 감성의 만남, 이런 조합을 추억하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그때의 즐거움이 현현한 작품 그리고 그 때의 기억이 많지 않은 팬이더라도 우리말과 감성으로 캐릭터들에게 더욱 깊이 공감하며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방법으로도 즐길 수 있게 하는 좋은 창구가 될 수 있는 작품 '사실 나는'입니다. 어디 한번 우리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뱀파이어와 소년의 풋내 나는 사랑놀음을 조망해보시지 않겠습니까.

 

 

P.S

구입 루트가 '네이버 시리즈' 단독 VOD 서비스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링크도 같이 올려봅니다.

https://series.naver.com/broadcasting/detail.nhn?productNo=2341004&isWebtoonAgreePopUp=true

 

사실 나는

생각하는 그대로가 얼굴에 나타나는 남학생이 같은 반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흡혈귀임을 알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러브 코미디 애니메이션

series.naver.com

- 라프텔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도 제공되고 있습니다.

https://laftel.net/item/25011/(%EB%8D%94%EB%B9%99)-%EC%82%AC%EC%8B%A4-%EB%82%98%EB%8A%94

 

(더빙) 사실 나는 - 라프텔

(더빙) 거짓말도 할 줄 모르고 감정을 감출 줄도 모르는 고등학교 2학년 평범 이하의 남학생 쿠로자키 아사히. 그에게는 전부터 몰래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다. 그 여학생은 바로 수수께끼의 인물인 시로가네 요코. 그런데 그 여학생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데...

laf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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