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한국에 도착한 '리즈와 파랑새'
-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 비평
- 2019. 3. 30. 13:46
올 가을 최대의 감성을 선사하겠다는 거창한 표어로 국내에 발을 디딘 리즈의 파랑새. 그 최대의 감성으로 여학생들 끼리의 우애, 친애 이외의 더 있을 듯한 감정과 관계를 통한 성장을 다루고 있다. 보통 저연령층 이외 애니메이션에게는 그다지 관대하지 않은 한국 스크린 시장에서 그것도 여성간의 미묘한 감정으로 감성을 전달한다는 마이너한 주제의 영화가 한국에 내딛을 수 있었을까.
물론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 중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쿄토 애니메이션의 작품이기도 하고 이전부터 원작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쌓아오던 ‘울려러 유포니엄!’의 시리즈라는 점에서 진출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내적으로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여러 차례 관람하며 포착할 수 있었던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한다.
이 작품은 취주악을 주제로 청춘의 성장을 다룬 타케다 아야노의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인 ‘리즈와 파랑새’ 라는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있다. 주인공들 이외의 흥미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있던 인물 ‘미조레’와 ‘노조미’의 관계를 조명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리즈와 파랑새는 표면적으로는 극 중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동화 ‘리즈와 파랑새’이기도 하며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취주악부의 대회 경연곡 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리즈와 파랑새 라는 가상의 동화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연상시키며 인물들 간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먼저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극 중 등장하는 가상의 동화 리즈와 파랑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실존하는 벨기에와 프랑스의 소설과는 무관한 것으로 순수한 영화 속 창작 동화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홀로 외로이 생활하는 주인공 리즈에게 파랑새가 찾아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보내다 리즈가 파랑새의 자유를 빼앗기를 원치 않은 나머지 파랑새를 다시 날려 보내 준다는 이야기다. 동화라는 설정 답게 이야기의 흐름도 간단하고 구성요소도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영화의 두 주인공에게 각각 대입시키기도 참 편해보이고 실제로도 이를 중심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한다.
우선 심리 묘사의 좋게 맞물리는 배경 작화의 면부터 알아보면 상당히 계획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우선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모든 기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미술적 연출들이 강하게 어필된다. 보통의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같은 채도는 낮고 대비가 높은 채색이 아니라 대비가 낮고 색감으로 눈이 피로하지 않을 듯한 파스텔톤을 채택하고있다. 거친 선의 질감과 그에 맞물리는 길다란 선들은 이 모든 것과 함께 수수한 동화의 삽화를 연상시킨다. 다만 인물들의 동세에서는 실제 사람의 움직임을 닮은 듯한 동세 템포 표현들과 대상의 고증을 살린 디테일한 움직임 묘사들로 연출로 심심하고 정적인 느낌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작화의 조화에 힘을 쓴 듯 하다.
먼저 작품 속 창작동화로 등장하는 리즈와 파랑새의 대략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리즈가 숲속에서 혼자 생활하며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으로 등장하며 여기서 파랑새와 만나며 파랑새와의 만남을 암시한다. 우선 애니메이션의 도입부 미조레의 발걸음을 클로즈업 하고있다. 일본에서는 구두까지 교복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교복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발 끝에서 미조레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끝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앉아서 노조미를 기다리는 와중에 발 끝을 다소곳히 모으며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성격의 묘사는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조미의 걸음걸이 클로즈업. 틈틈히 부각되는 노조미의 발걸음 이지만 미조레의 발걸음 이후 보여주는 노조미의 발걸음은 유난히 대차다. 위로 향하는 발끝과 더불어 시원시원한 보폭 그 이후 목이 시원하게 드러난 묶음 머리는 노조미의 성격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후 서로를 마주치고 함께 부실로 올라간다. 올라 가는 장면에서도 두 사람의 행동 차이에서 보이는 성격의 차이가 나타난다. 미조레는 신발장에서 꺼내든 실내화를 조심히 내려놓고 갈아신지만 노조미는 아무렇게나 던진 후 맞춰 신는다던가 모퉁이를 쓸면서 지나간다는 식이다. 여기서 서로에게 서로를 의식하며 서로에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화 전체의 과제에 시발점을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는 미조레가 앞서 가는 노조미의 모퉁이에서 손을 쓸고 지나간다던가 두 칸씩 힘차게 오르는 행동을 따라하며 노조미에게 영향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실에 들어선 후 단 둘이 있는 상황이 잠시 이어지면서 둘 사이의 관계 묘사가 이어진다. 악보를 바라보는 미조레의 얼굴에서 눈이 특히 클로즈업 된다. 여기서 작화 연출의 특징이 또 한번 부각된다. 미조레가 노조미의 얼굴을 응시하는 모습에서 눈을 깜빡이는데 많은 동화로 이루어져 눈을 깜빡이는 속도를 부드럽고 속도감 있게 묘사하여 시선에 의미를 더욱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합주 경연의 자유곡이 리즈와 파랑새임을 언급하며 이야기의 핵심으로 속으로 리즈와 파랑새를 끌어들인다.
이후 앞으로 계속 리즈와 파랑새, 노조미와 미조레의 상황을 교차편집 하며 동화의 진행과 더불어 둘 사이 관계 변화를 묘사하며 관객에게 둘 사이의 심경과 심리의 변화를 재확인하며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부여한다. 클로즈업 해서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부각시켜 심리상태를 끊임없이 관객에게 확인시키고 다시금 관객이 해석하게 하는 모습과 교차편집 되는 리즈와 파랑새 동화 속 둘 관계의 모습을 끊임없이 투영시켜서 둘의 관계를 극의 후반까지 계속 생각할 거리로 남겨두며 잔잔한 묘사와 내용 때문에 자칫하면 지루할지도 모르는 극을 끝까지 생각해야 하는 이야기로 만들어 관객에게 과제를 남김으로써 끝까지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영화 전체에 부여한다.
여고생의 세계는 복잡하다.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어렵고 표현은 어설프다. 순간의 단순한 임기응변과 깊지 않았던 반응이 상대방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어 생각하지 못한 결과로 다가와 버리기도 한다. 사실 여고생 외에도 솔직하지 못한점이 줄곧 커다란 문제가 되어 버리기도 하지만 이를 고교생의 고충과 여성의 심리로 묶인 매듭이라는 점이 이야기의 개성이다. 갈등의 발단은 미조레가 음악 지도 선생님께 음대 진학을 추천 받은 것. 그것을 알게 된 노조미는 항상 관계에 있어서 서툰 미조레를 자신이 이끌어주던 집착이었을까 책임이었을까 단순한 일편의 해석으로는 설명 불가능할 감정이 작동한 듯한 노조미는 미조레를 음대 진학에 부추기는 동시에 자신도 음대를 지망한다고 말하였다. 노조미가 음대를 지망한다면 함께 음대를 지망하겠다던 미조레의 말은 언듯 해석하기에는 노조미가 미조레를 이끄는 듯한 모습이다. 여기서 교차편집 되는 동화 속 장면은 인간이 되어 리즈 앞에 나타난 파랑새의 모습 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모티브는 파랑새는 외롭게 생활하는 리즈에게 연민을 느껴 함께 보내기 위해 인간으로 변신해 나타났지만 이것이 파랑새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기반한다면 노조미 덕분에 함께 음대를 지망하게 된 미조레는 속박되어 있는 파랑새가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초반부의 일반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사실 이 부분에서도 어느 쪽이 파랑새고 어느 쪽이 리즈인지는 한번도 명확히 구분 지을수가 없다. 미조레가 내비친 첫 결정에 노조미가 영향을 받아서 그런 말과 선택을 내리게 된것 이라고 보게 되면 이는 노조미가 파랑새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이 관객의 기분에만 적중하면 매 장면과 연출마다 생각의 선택지를 남겨두어 생각하게 만들어 상영시간 내내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이후 교차편집으로서 관객의 시선에만 겹쳐 보이던 리즈와 파랑새, 미조레와 노조미는 이야기속 인물들도 의식하고 그들의 내부 문제로 진화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동화 속 이야기와 같이 서로를 위한 마음을 점철된 것이라는 점이 이야기의 여운을 남길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주변인들이 이야기로 들어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한껏 더 고양된다. 함께 취주악부를 함께 해 오던 동급생 나츠키와 유이 그리고 시리즈 진행중 새로운 등장인물인 미조레 담당 파트의 후배 칸자키, 이들이 이야기 중간중간 미조레와 노조미의 이야기에 참여하며 이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나츠키와 유이는 노조미의 결정의 분노한다 이전에 미조레에게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아 미조레에게 피해를 끼친 전과도 있으므로 이들은 노조미를 질타하지만 둘의 문제로 이미 깊게 발전해서 노조미의 심경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후배 칸자키의 물음에 노조미가 영향을 받는다. 언제나 노조미를 따를 뿐이며 그의 결정이 곧 미조레의 결정이었던 지금과는 달리 칸자키라는 후배가 미조레에게 관심을 가지며 미조레또한 노조미 이외의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또 한걸음 내딛는 기폭제가 되어주고 있었다. 이는 노조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로서 노조미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다는 해석으로도 넘어갈 수 있어 속박의 의미를 크게 내포하기 시작하며 이는 곧 처음에 해석됐던 미조레가 파랑새라는 해석이 노조미가 다시 파랑새라고 인식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된다. 이렇게 관객들의 인식이 계속 바뀌는걸 유도하여 관객들의 집중을 끊임없이 영화 속으로 다시 끌어들인다.
주로 영화에서는 노조미의 심정 변화로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이를 원심으로. 이야기가 진행 되는 양상이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며 이를 생각한다면 노조미가 관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위치로 보이게 된다. 따라서 리즈와 파랑새 중 노조미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 쪽일까 중후반까지 계속 우선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 중에서는 노조미의 캐릭터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활발이 하고 사람을 대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다는 점이기 때문에 여러 인물들과 대화와 심경파악으로 항상 플롯의 전면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전체에서 가벼운 존재감으로 보일 수 있는 미조레는 주의를 들이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심경변화를 작은 움직임과 심경에 따른 행동의 반영으로 보여준다. 시선의 떨림, 걸음걸이의 변화 ,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대담해지는 행동들. 그 중에서도 중후반부터 미조레의 성장으로 이야기의 중심축이 바뀌는데 그걸 전면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계기는 작 중 학교에서 유행하는 ‘좋아해 허그’에 대한 미조레의 관심이다. 노조미의 열등감과 집착으로 점철된 노조미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낀 미조레는 ‘좋아해 허그’를 노조미에게 요구하며 직접적으로 노조미의 심경과 맞부딫힌다. 하지만 노조미가 무시하듯 거절하고 미조레에게도 직접적인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서부터 주변인들의 인식과 말들이 모두 맞아 돌아가면서 폭발하게 되어 미조레의 성장 묘사가 나타난다.
리즈와 파랑새 곡 속 파랑새와의 이별이라는 3악장에서 미조레의 오보에와 노조미의 플루트 둘의 조화가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오히려 미조레는 노조미의 연주에 맞춰주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연주 실력을 제한하고 있었다. 이를 선생님과 상담하며 누가 누구를 속박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미조레 스스로도 자문하다가 코사카에게 본인의 실력을 발산해달라는 요구를 듣게 된다. 작품 속 리즈와 파랑새 동화에서는 리즈가 파랑새와의 생활은 행복하지만 자신이 파랑새를 속박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파랑새에게 날아가라고 한다. 그것을 오보에와 플루트의 조화로 풀어내는 3악장에서는 미조레의 오보에가 노조미의 플루트에게 속박 되어 있는 동시에 노조미의 집착에 영향 받는 미조레 이 둘을 생각하면 전체적으로 미조레가 파랑새 노조미가 리즈라는 생각으로 유도된다. 그리고 마지막 성장 플롯은 마지막 장면의 연습에서 자신만의 훌륭한 연주를 펼치는 미조레 그리고 서로는 깨닫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속박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서로의 이야기 같다고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서로는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날수 없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끝에 서로가 서로에게 리즈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파랑새가 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편적인 결론을 내리지만 그 내부에 서로의 인식이 계속 바뀌는 영화 전체의 진행에서는 정해진 결론이 없이 계속 볼때마다 더 무게를 실어 관찰한 부분에 따라 해석이 바뀌기도 하고 인식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이 감성을 주로 표방하며 일상을 담은 성장영화라는 주제부터 지루해 보일 수 있는 그리고 묘사도 잔잔하며 클로즈업이 대부분 의식의 진행인 연출도 자극적인 묘사는 없는 영화에서 끊임없이 관객들을 영화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관객들도 의식을 영화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고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가을 최대의 감성을 표방하며 애니메이션에게 친절하지 않은 국내 스크린까지 침투한 쿄토 애니메이션의 자신감의 출처는 쿄토 애니메이션이라는 믿음, 신흥 감독 중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연출, 수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인기 시리즈 ‘울려라 유포니엄!’의 스핀오프라는 점 등등이 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플롯과 모티브의 힘에 근거한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보수적인 한국 스크린시장에서 관객 확보도 어느정도 성공했고 마니아층 이외에 관객에게도 조금씩 어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 애니메이션 배급 시장에는 좋은 신호로 다가오는 듯하다. 특정 시리즈와 장르에만 국한되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수입 시장에서 이번 일이 계기로 더욱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진입을 시도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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