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문자들을 대하는 프로의 자세 - 책 낭독

 나는 독서에 관해 항상 흥미가 있었다. 이런 관심과 연습에 대한 열망을 겹쳐서 낭독 연습을 연습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고 있다. 낭독이라 하면 편안히 테이블에 앉은 깔끔한 차림의 사람이 찬찬히 품위 있게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내가 하는 연습의 실상은 전혀 우아하지 않다. 첫째 이게 내가 알던 낭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못 읽고 발음 씹고 절고 혀가 지치고 뱃심이 딸리고 아수라장도 아니다. 낭독을 시작한 초반에는 더더욱 심했고 몇 달 동안 십 수권의 책들을 낭독으로 독파한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몹시 고통스러운 과정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낭독이라는 것이 내 무의식에 어떤 것이 수시로 바뀌어 어떤 날은 좋은 발음에 좋은 소리 그리고 좋은 템포로 잘 읽히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평소보다도 더 절고 발음 씹고 소리도 잘 안 나올 정도로 낭독이 힘들 때도 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되게 잘 읽히다가 갑자기 안 되는 날처럼 안 읽히기도 하고 반복이 되었다. 안 읽히는 날은 이 따위 발음과 이 따위 지속력 집중력 이 따위 소리로 성우가 될 수 있겠냐라는 온갖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던 중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책을 읽다가 낭독이 잘 안 되는 탓에 힘들어져서 서서 읽던 것을 다시 앉아서 읽게 되었는데 뭔가 신경을 쓰며 낭독하다 보니 다시 잘 읽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분 더 읽어나가다 보니 낭독하면서도 눈을 들썩이고 얼굴 근육을 들썩이며 전자책에 얼굴을 파묻으려는 나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원장 선생님이 강의할 때 텍스트(일련의 문자)를 읽으며 말해 내려가는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원장 선생님은 이미 50대의 나이로 성우계에서도 입지가 확실하고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선생님이시지만 문득 떠오른 원장 선생님의 낭독하는 모습은 눈을 치켜뜨며 종이에 얼굴을 파묻을 듯이 문장마다 표정이 바뀌어 가며 집중하시던 모습이다. 이 모습이 떠오르니 낭독이 잘 될 때와 안 될 때의 차이점과 원장 선생님의 안정적인 낭독에 따르는 집중과 집중이 반영되어 나오는 얼굴의 연관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 부분을 생각하니 지금 나가는 더빙 스터디에서도 스터디를 주도하시는 선생님이 시연으로 잠깐 대본을 읽을 때도 얼굴이 희번덕하게 변하고 순간 온 얼굴 근육을 쓰면서 집중하는 모습이 떠올라 프로들이 공통적으로 텍스트를 접할 때의 자세는 이런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장마다 달라지는 표정 들썩이는 눈썹과 눈의 윗근육 그 사이로 번뜩이는 눈.

 분명 선생님들도 아주 가끔 씹거나 절 때가 있지만 극도로 드문 일이고 절더라도 바로 원래의 컨디션대로 복귀해 프로처럼 읽어 내려가신다. 이들을 의식하며 다시 나도 선생님들처럼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어절 하나하나에 신경을 몰두해 적극적인 자세로 낭독을 하니 평소에 잘 되는 날의 낭독인 것처럼 낭독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의 평소 낭독 혹은 안 되는 날의 낭독을 떠올려 보았다. 대충 읽는 둥 마는 둥 흐릿하게 스리슬적 읽어 넘어가고 얼굴은 그대로에 의자에 삐딱한 자세로 파묻힌 자세가 그때의 자세임이 생각나면서 문자를 대하는 자세부터 프로스럽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문득 낭독을 하다가 드는 일련의 생각에 자그마한 깨달음을 얻어 이를 오래 기억하고 내 몸에 붙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글로 남기는 바이다.

자그마한 연습을 하더라도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나의 기준이 아닌 전체가 인정할 만한 기준으로 심혈을 기울여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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